금(金)은 화학 원소의 이름이다. 신라틴어 표기는 aurum이다. 하여 이 화학 원소의 부호는 Au이고, 원자 번호는 79이다. 색깔은 황색 혹은 적황색이고, 보통 모래 혹은 바윗돌 속에 존재한다. 바탕은 무르고, 연성(延性)과 전성(展性)이 강하고, 화학적 성질은 안정적이고, 산(acid)과 알칼리(alkali)에는 녹지 않지만 왕수(王水⋅aqua regia)에 녹는다. 금, 즉 황금은 고대의 다섯 가지 금속(五金)의 하나였으며 백금(白金)⋅청금(青金)⋅적금(赤金)⋅흑금(黑金)⋅황금(黄金)을 오금이라고 불렀다. 중국 당(唐) 안사고(顔師古)《한서(漢書)⋅식화지상(食貨志上)》주(注):"金謂五色之金也。黄者曰金, 白者曰銀, 赤者曰銅, 青者曰鉛, 黑者曰鐵。"《정자통(正字通)⋅금부(金部)》:"金, 五色金也。白金銀, 青金鉛錫, 赤金銅, 黑金鐵, 黄金爲之長。"다시 말하면 금(Au), 은(Ag), 구리(Cu), 철(Fe), 주석(Sn)을 오금이라고 일컬었다. 듣건대"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고려 말 최영(崔瑩)의 아버지 최원직(崔元直)이 아들에게 유훈으로 남긴 말이란다. 여기서 황금은 글자 그대로 황색의 금을 가리키며, 영어의 골드(gold)이다. 황금, 즉 금은 귀금속 가운데 으뜸이며 자고이래로 부의 상징물로 여겨 왔다. 해서 사람이면 다 금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러니 권문세가와 고관대작들은 오죽하랴. 아마 십중팔구는 한두 마리의 금두꺼비를 집 안 깊숙이 모셔 두거나 금괴(금덩이)를 산더미같이 재어 놓고 싶어 안달했을 터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금두꺼비를 가졌으면 금송아지마저 가지려고 눈에 불을 켠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르기를 욕심이 사람 죽인다고 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고려 말은 세상이 어수선하였다. 하여 이런 와중에 행여 재물 욕심으로 패가망신하지는 않을까 저어하여 지레 위와 같은 유훈을 어린 자식에게 남겼을 것이다. 시끄러운 세상에서는 자칫하면 구설에 휘말려 작게는 곤욕을 치르고, 크게는 집안이 쑥대밭으로 되기 십상이다. 하여 검은돈을 아예 거들떠보지 말고, 재물 욕심을 대변하는 황금조차 돌같이 보아 초개와 같이 버리라고 가르친 듯하다. 실제로 고려 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형제가 길에서 주운 황금을 강에 버린 설화가 몇몇 지방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고학적 발굴 중 하대(夏代) 말기에 상당하는 이리두 문화(二里頭文化)의 여러 유적지에서 꺾창❲戈❳⋅도끼 모양의 무기❲戚❳⋅술그릇❲爵❳⋅칼❲刀❳⋅화살촉 등 청동기를 출토하였다. 《갑골문편(甲骨文編)》부록 상(上) 제107쪽에 한 개의 ▢(《명장(明藏)》773) 자가 수록되어 있는데 하록(夏渌)은"갑골문의 금(金) 자이다","금속의 예기(鋭器) 모양을 본떴다"(《평강은문자학(評康殷文字學)》제478쪽)라고 해석만 하였지 논증하지는 않았다. 금문(金文)에"▢"(效父簋)가 있었는데《한어고문자자형표(漢語古文字字形表)》제527쪽에서는 금문의 금(金) 자의 최초 형체로 보고 수록하였으되 상대(商代)의 갑골문이 빠져 있다. 강은(康殷)은 말하였다:"두 개의 점은 화살과 도끼를 주조하는 원료 - 쇳덩이(구리 덩어리)의 모양을 대표한다."그리고 강은은"부풍(扶風)에서 출토한 무게 9.3근의 구리 덩어리"그림을 붙여 놓았으며, 앞에서 보인 금문을"최초의 금(金) 자이다"라고 생각하였다.(《문자원류천설(文字源流淺說)》제304쪽) 그러나 이 글자는 여(吕) 자이지 금(金) 자가 아니다.
금(金) 자는 주대(周代)에 출현하였다. 고대의 제왕은 혼자서만 사용하는 동(청동)으로 된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가장 좋은 원료로 주조하였는데,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검이 바로 한 예이다. 주대의 사람은 이 각도에서 글자를 만들었다. 금문은 ▢(仲盤) 모양으로 윗부분의 부품은 화살촉을 표시하고, 아래쪽은 왕(王) 자의 고대 형체인데 특별히 왕을 위하여 화살촉을 주조하는 상등 원료 길금(吉金)을 표시한다. 이 글자는 금(金)이고, 본뜻은 구리❲銅❳이다. 장예홍(蔣禮鴻)은 말하였다:"화살은 금(金)이 주체인데 금(金)은 화살촉이다. 오늘날 은허(殷虛)에서 출토한 동족(銅鏃)은 ▢ 모양인데 이것이 증명해 준다. 금(金)은 그 형상을 본뜰 수 없어서 화살촉의 금(金)으로 나타냈다.⟦矢其金體, 金則矢鏃也。今殷虛所出銅鏃作▢形, 斯其驗也。爲金不可象, 故卽矢鏃之金以示之。⟧"(《독자억설(讀字臆說)》,《설문월간(說文月刊)》제3권 12기) 금(金) 자는 불완전한 화살촉의 형상으로 장예홍의 설이 거의 맞다.《맹자(孟子)⋅이루하(離婁下)》:"抽矢, 叩輪, 去其金, 發乘矢而後反。"조기(趙岐)《주(注)》:"叩輪去鏃, 使不害人。"《한시외전(韓詩外傳)》권6 제24장:"昔者楚熊渠子夜行, 見寢石以爲伏⻁, 彎弓而射之, 没金飮羽。"금(金)은 화살촉을 가리키며, 금(金) 자 구조 형체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
금(金) 자를 또 ▢(競簋)으로도 써서 가로획 한 개를 더했으나 여전히 왕(王) 자이다. 두 개의 구리 덩어리를 표시하는 여(吕) 자를 더하여 ▢(麥鼎)⋅▢(宅簋)⋅▢(同卣)으로 만들었다. 여(吕) 자를 왕(王) 자 아래쪽의 빈 곳으로 옮기어 ▢(番生簋)⋅▢(彔伯簋)으로 썼다. 두 개의 점을 나누어서 왕(王) 자의 두 빈 곳에 썼는데 ▢(彔簋)⋅▢(毛公鼎) 모양이다. 또 한 개의 점을 더하여 빈 곳을 메웠는데 ▢(守簋) 모양이다. 두 개의 점을 나누어서 왕(王) 자 아래쪽의 두 빈 곳 속에 썼는데 ▢(夨方彝) 모양이다. 세 개의 점을 세 빈 곳에 썼는데 ▢(史頌簋)⋅▢(許子簠)⋅▢(沇兒鐘) 모양이다. 또다시 한 개의 점을 빈 곳에 더하여 메꿨는데 ▢(師㝨簋) 모양이다. 전문(篆文)은 윗부분의 화살촉 부호를 금(今) 자로 바꾸어 음을 나타냈는데 ▢ 모양이며, 왕(王) 자는 허물어져서 토(土)로 되었다. 금(金) 자는 광물을 표시하지 않기에"종토(从土)"의 설은 그르다. 전국 시대의 금(金) 자는 이미 황금(黄金)을 가리켰다.《한비자(韓非子)⋅내저설상칠술(内儲說上七術)》:"荊南之地, 麗水之中生金, 人多竊采金。"허신(許慎)은"오색금(五色金)"으로 해석하였는데 금속의 총칭이다.